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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23일. 시간이 많이 지나 버렸군요.
미루고 미루다 결국은 두달 가까이 되서 이야기를 하게됩니다.
어찌된게 나이를 먹을수록 역마살이 끼는건지,
어쩌다 한두번 지방 출장이 아니라, 서울 출장이 되버렸습니다.
그래도 친구덕에 이런 호강을 다 해보고...
백만년만에 사람다운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이럴때는 살아 있는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짜인데다가 R석, 2층 맨 앞자리.
음악 감상에 더할나위 없이 좋을 뿐 아니라,
연주자 하나하나의 손짓, 몸짓까지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볼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아마 제 돈주고 갔었다면...고민 많이 했을 것 같습니다. ^^)

어떤 공연도 그렇겠지만, 라이브의 감동 때문에 공연장을 찾는 것 같습니다.
CD, MP3로 듣지 못하는 섬세하고 미묘한 음 하나하나가 들리고, 보입니다.
"음악을 본다"라는게 이런 감동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처음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CD로 들을 때도 이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괜찮다의 차원이 아니라 놀라움 자체입니다.

프로그램
글린카, 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
M.J.Glinka, Russlan and Ludmilla Overture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3 in D Minor, op.30
림스키 코르사코프, “스페인 기상곡”
R.Korsakov, "Capriccio Espagnol", op.34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불새”
I.Stravinsky, "The Firebird"-Suite (1919)


첫번째 연주곡 "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은 베토벤 바이러스에도 나왔던 곡이라 많이들 아실겁니다.
비문명인인 저는 몇마디를 듣고서야 "아~!" 하고 인지했지만요.
단지 귀로만 듣던 음악이 아닌, 눈으로 보고, 온몸으로 체험 하는 호사스러운 경험입니다.
현악 연주자들의 정확하게 자로 잰 듯한, 흔들림 없이 일치된 bowing과 명쾌한 음들.
관악기나 타악기 연주자들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연주 자체가 예술입니다.
마치 덩실덩실 춤을 추는 듯 하지만, 오케스트라 전체를 지휘하는 마에스트로 유리 시모노프.
약 5분 남짓한 연주이지만, 찌릿찌릿한 전율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우뢰와 같은 박수와 함께 마에스트로가 퇴장하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습니다.
이어서 "살아있는 라흐마니노프"라고 하는 피아니스트, 콘스탄틴 쉐르바코프와 함께 등장합니다.
피아노 협주곡 3번. (참고 : 위키백과)
무려 45분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곡입니다. 게다가 오케스트라와 협연.
보고 있는 저 조차도 긴장을 안할 수가 없습니다.
가슴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선율에 따라 흔들리고, 머릿속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상상이되는...
정말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열렬한 환호와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더군요.
앙코르곡도 좋았는데...곡목은 잘 모르겠습니다. =_=;

1부가 끝나고 15분간의 휴식시간이 있더군요.
흥분한 마음을 진정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옆이 환하게 밝아지는게 아니겠습니까?
처음에는 불을 너무 환하게 켜는거 아닌가 했지만, 곧바로 차분한 여성의 목소리에 상황 판단이 됬습니다.
한국 - 러시아 수교 20주년 및 서울경제신문 창간 50주년 기념 내한 공연이라 프로그램 진행을 하는거였습니다.
뭐, 이런건 하든지 말든지 신경 끄고...지난 1시간 여의 감동의 여운이 쉽게 가시지가 않더군요.

그렇게 꼼짝않고 있다가 2부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2부 첫곡은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스페인 기상곡.
스페인의 정취가 물씬, 흠뻑 담겨있습니다.
꼭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어딘가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참...말로 표현하기 어렵군요. 표현력이 너무 부족합니다.

다음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어디서 들어 본 것 같기도 하고, 처음 듣는 것 같기도 하고...
공연 후 일주일만에 동영상을 구해서 또 보고 있지만, 조금은 낮선 곡입니다. 저에게는요.
라이브 보단 못하지만, 동영상으로라도 다시 보고 있으면 참 좋습니다.
잔잔하기도 했다가, 뭔가 격정이 파도처럼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하고.
눈으로는 오캐스트라와 지휘자의 현란한 기술, 기교 같은걸 보고 있고,
가슴은 그 리듬에, 멜로디에 쿵쾅쿵쾅 거리고,
머릿속에서는 어떤 이야기 책을 읽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모두들 기립 박수에 환호와 갈채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흥분...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였습니다.
그에 응답하는 앙코르 공연도 역시 깔끔했습니다.
저는 2층에 있었지만, 1층의 비싼 자리에 있던 분들은 모두 무대 쪽으로 나가서
팝, 락 공연장을 방불케 하는 열기였습니다.
3-4번에 걸쳐서 앙코르가 있었는데, 아쉽게도 동영상에는 Bumble-Bee 하나만 소개 됬네요.
2시간이 아닌 3시간 공연인 것 같았습니다. 그 감동까지 생각하면 공연 시간은 의미가 없겠지만요.
기회가 된다면, 자주 가보고 영혼의 치유(?)를 받고 싶지만,
제 주머니 사정에 비하면 많이 럭셔리한 일이어서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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